오마이뉴스
홍상수는 한국 영화계의 거인이다. 독립영화가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30여 년 동안 어느 창작자보다 성실하게 작업해 30편이 훌쩍 넘는 작품을 발표했다. 감독 개인의 사생활이 영화만큼, 어쩌면 그보다도 더 유명해졌다지만, 그로부터 작품세계가 훼손되거나 소진되는 대신 굳어지고 투명해진 것이 놀랍기까지 하다. 개인인 작가의 삶이 작품과 맞물려 더 나은 영화로 이어지는 과정은 제 삶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돌아보는 예술가가 아니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길이다. <탑>은 홍상수의 28번째 장편영화다. 제 삶을 한 걸음 떨어져 돌아보려 한 홍 감독 자신의 시선이 구조에서부터 엿보인다. '탑'이란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는 좁고 높은 건물이 장소적 배경이다. 영화적 형식을 건축적 구조와 연동해 풀어가는 과정이 비선형적 전개를 즐겨 채택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특히 잘 어우러진다. 1층으로부터 2층, 3층, 4층, 옥상으로 차례로 오르며 전개되는 구성이 영화 속 시간의 흐름과 얽혀서 독자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일으킨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홍 감독 필모그래피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이라 말한다. 그건 감독 본인이 투사된 듯 보이는 영화감독 병수(권해효 분)가 다른 영화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인 딸(박미소 분)과 함께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 딸의 입을 통해 저 자신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말하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며, 그럼에도 딸이 바라보는 세계 바깥에 또한 감독의 삶이 존재한단 걸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러모로 이제껏 그의 영화가 다루지 않던 새로운 지점을 무대 위에 올렸고, 좀처럼 직면하기가 쉽지 않은 일을 제 영화 안에 품어 내려 한 결과다. 누구나 자연스레 떠올릴 밖에 없는 영화와 감독의 사생활 간의 관계를 발전적으로 끌어안은 시도다. 건축과 영화가 기묘하게 맞닿는다 병수와 딸 정수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여자 해옥(이혜영 분)의 건물을 찾는다. 정수가 인테리어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듣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다. 병수는 꽤 잘 나가는 감독인 모양으로 최근엔 해외 영화제에서 제법 큰 상까지 받은 모양이다. 해옥은 병수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고 그 성과를 추켜세우기에 여념 없다. 병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예술가들이 자주 그러했듯이 제 작품에 대한 관심을 능숙하게 흘려 넘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선형적, 또 서사적이지 않다. 선으로 그은 듯이 뒤에서 앞으로 쭈욱 나아가거나, 중요한 사건과 결과를 좇아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의 영화는 창작자가 만든 극의 형태를 갖지만,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상호작용 가운데 드러나는 '진실' 혹은 '감독이 진실이라 믿는 것'을 포착하는 데 힘쓴다. 때문에 사건에 집중하는 이들에겐 '술자리에서 여자를 어떻게 해보려는 남자'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이에겐 '권력', '자존', '비겁', '사랑', '진실'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는 것일 테다. 나는 둘 모두가 일견 타당하다 여긴다. <탑>도 그와 같은 특징을 내보인다. 딸을 부탁하러 만든 자리에서 드러나는 엇갈린 욕구들, 아빠가 자리를 비운 새 그 진면목을 성토하려는 욕구를 참지 못하는 딸, 또 잠시 담배 한 대 태우러 내려온 그녀에게 건물주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직원의 모습까지가 카메라에 그대로 붙들리고 만다. 그래서 그와 같은 일들이 무엇을 빚어내는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고, 또 어쩌면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일은 일대로 진행되고, 그 순간의 말과 오간 감정들은 또 그대로 남는다. 층을 타고 오르며 전개되는 이야기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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