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펼치는 순간, 페이지 사이에 깃드는 평화
오마이뉴스

책을 펼치는 순간, 페이지 사이에 깃드는 평화

밥상 차림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린'으로부터 소박 정성스런 밥상 차림까지 우리나라 곳곳으로다. 상차림에는 하늘이 담겼더라. 물론 땅과 바다도 담겨있었다. 그러고 보니, 바람의 표정도 담겼다. 상을 차리는 일이란, 제 곁에서 나는 먹을 만한 것들이 오랜 시간을, 사람의 손길과 부비벼 사람을 살려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산도 담기고, 바다도, 갯벌의 짭조름 눈가에 슬며시 맺히는 소금기 한 움큼도 담겨있었다. 마지막 부비고 부비고 '손맛'과 '맵시'는 만의 하나 품 정도였다. 그 만의 하나의 품이 같은 땅, 같은 하늘, 같은 산 바다와 갯벌을 담았어도 이 집과 곁의 집 맛과 모양을 다르게 피워내었다. 대명천지, 이 벌건 대낮 같은 시절에 떼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라니, 그 전쟁의 포화가 비행기로 열네 시간 이 먼 땅까지 생활의 위기로 번져오는데, 엎친데 덮쳐 '파병 요청' 뉴스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공습, 사망, 반격, 파괴. 이 격렬한 언어들의 시간에 상차림이며 밥이라니, 한가한 소리다. 온통 시선을 빼앗는 죽음의 말들 사이에서 이렇게라도 한가한 먹고 사는 이야기에, 뭔가 가느다란 삶의 빛이 고이거든. 그 고운 숨 한 모금 권커니 잣커니다. 밥을 나누듯 책도 작가와 편집자, 독자를 이어 상의 자리에 밥의 자리에 책을 놓는다. 책을 짓는 일이란, 상을 차리는 일이다. 누군가 빚은 세계가, 누군가 짓는 손을 통해, 누군가 그 세계 안에 깃들며 하루치 이틀치 삶의 기운을 얻는다. 짓고 먹고 나누며 살아가는 일, 문자의 발명 이래 수천 년을 늘늘 살아온 일이다. 앞에서부터 누군가는 작가, 편집자, 독자이다. 그 사이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가 있다. 책방(서점)이다. 누군가의 짓고 담아낸 밥과 밥을 누군가 먹는 사람 위해 차리내는 존재, 그 밥상을 펼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수많은 책방 서점이 있다. 참고서까지 다루는 중형 도시 종합서점으로부터 마을 숲 어귀 작은 책방까지다. 자고 나면 사라지는 종합서점의 자리를 동네 책방이 거꾸로 채워나가기 시작한 것은 2014년 겨우 다듬어진 도서정가제 덕분이다. 책방 서점의 새로운 생태계가 지난 10년 조성된 것이다. 그 생태계는 결 다른 책방지기의 내력이 스민 취향의 책 공동체다. 네다섯 평 규모부터 제법 작은 건물 한 동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동네 책방은 1000여 곳을 넘는 숫자를 이루고 있다. 동네 책방은 그가 깃든 마을, 동네의 무엇과 늘 만난다. 수많은 읽기 쓰기 동아리, 저자와 만남, 쓸 데 있고 없고 가리지 않는 재미난 클래스, 아이들 공부방 노릇부터 마을 아짐 아재 사랑방 역할과 만난다. 작가의 생각을 머금은 책을 수없이 많은 빛깔 색깔로 펼쳐내는 곳이다. 그 동네 책방이 모여, 2018년부터 작은 네트워크를 이뤘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책방넷)다. '힘겨운 3년'을 버티며 우리는, 우리가 책이라는 물건 안에 담긴 누군가의 문장을, 우리 유기체 곳곳으로 실어 나르는 실핏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를 통해 닿은 그 문장 하나가 누군가를 다시 평안케 하리라는 것을 안다. 동네 책방이 만드는 북페어 '사이에서'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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