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정에 '여순사건 추모비'가 서 있는 이유
오마이뉴스

초등학교 교정에 '여순사건 추모비'가 서 있는 이유

전남 구례 토지면은 '운조루'의 고장이다. 과거 시골 외할머니댁 드나들 듯 자주 다녔던 곳이다. 지금은 국가 지정 문화재로 등록된 데다 조선 후기 양반가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평가받는 '타인능해(他人能解) 뒤주'로 유명해져 주말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됐다. 참고로, 타인능해(他人能解)란 직역하면 누구든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주위의 가난한 이웃에게 쌀을 보시하는 집주인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운조루 옆에 따로 유물 박물관까지 지었고, 주변에 한옥 식당과 카페까지 늘어서 멀리서 보면 한옥 마을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 뒤로는 웅장한 지리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젖줄 섬진강에 기대어 너른 들판이 펼쳐진 천하 명당 이곳에 가슴 아픈 현대사가 숨어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어릴 적 동네 마실 다니듯 찾아온 곳이었건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었다. 3·1절 기념 행사장 가던 주민 22명 학살 당해 누구는 '구례 파도리 3·1절 발포 사건'이라고 길게 불렀고, 다른 누구는 그냥 '파도리 사건'이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구는 쉬쉬하며 말하길 꺼렸다. 해방 후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 행사 당시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무려 22명의 주민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파도리 주민들이 기념행사가 열린 토지초등학교 부근으로 가던 중 길을 막아선 경찰과 충돌했다. 대다수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으나, 당시 경찰서에 붙들려가 고문당해 죽은 이들도 있다고 한다. 단지 경찰의 제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식량난을 해결해 달라는 요구와 통일 정부 수립에 대한 바람,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친일파를 단죄하라는 주민들의 주장에 경찰은 총격으로 화답했다. 당시 미군정은 좌익 세력의 3·1절 기념행사를 불허했다. 민심의 이반과 동요를 두려워한 조치였고, 결국 유혈 사태를 불러왔다. 소련과 대립하던 미군정은 좌익 세력을 경계했고, 친일파가 다수였던 경찰의 수뇌부는 그들의 충견을 자처했다. 좌익 세력은 미군정과 친일 경찰에 척결해야 할 '공동의 적'이었다.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은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았고, 이 외진 토지면에까지 광풍을 몰고 왔다. 최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는 당시 희생자들을 국가의 폭력에 의한 피해자로 공식 인정했다. 만시지탄일지언정 79년 만에 진상규명의 길이 열린 셈이다. 관련 자료도 부족하고, 당시를 증언해 줄 이들도 거의 세상을 떠나 만만찮은 과제다. 다행히도 그 실마리를 풀어줄 이름이 등장했다. 진화위는 당시 토지초등학교 교사였던 박지래 선생을 3·1절 기념행사를 주도한 인물로 특정해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자로 인정했다. 진상을 규명하게 되면 더 많은 피해자의 이름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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