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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처벌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경찰 앞에서 지문 닦아낸 목사

몇 년 전 베이비박스를 찾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 언덕길을 처음 올랐다. 예상보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 험한 길을 찾아든 절박한 사연의 사람들과 영문도 모른 채 박스 안에 넣어졌을 아이들이 떠올라서였다. 어느 추운 겨울 새벽, 대문 앞 생선 박스에 담겨 있던 아이를 맞이하면서 시작된 베이비박스였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던 유기아동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양육이 포기되는 보호아동과 그 부모들의 참혹한 사연도 함께 떠올랐다. 베이비박스 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이름인 이종락 목사는 그 뒤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이 목사의 베이비박스에서 시작된 고민의 갈래가 유기아동에서 모든 보호아동으로, 여성이 처한 현실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까지 확장되어 왔다. 한때 우리 사회의 격렬한 논쟁거리였던 베이비박스는 이제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은 아니다. 다만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불멸의 고통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고통을 오롯이 받아 안은 장치가 베이비박스였고 그곳에서 시작된 아이들의 미래는 우리 사회가 안전하게 받아 안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베이비박스가 생긴 이래 현재까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이들을 위해 작동해야 할 법과 제도의 공백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나마 존재하는 법과 제도는 사각지대를 만들었고 그늘진 그곳에서 아이들은 신음하고 있다. 찬반 논란에 휩싸였던 베이비박스 난곡동 언덕길을 다시 올랐다. 베이비박스로 오는 아이들 숫자는 그새 80~90%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이종락 목사는 아직 거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이비박스가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곧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와중에 찾아온 것은 격려가 아닌 공문이었다.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조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발송처는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구청과 경찰이었다. 공문은 폐쇄와 처벌을 예고하며 3년 동안 반복해서 날아왔다. 이 목사는 항변했다. "아니 당신들이 공무원 맞나. 내 집에 내가 구멍을 뚫어서 만든 생명 살리는 박스를. 정부에서 하지 못한 일을 (아이들을) 살리고 있는데 정부는 대책도 없잖아. 그러면 법 제도 행정 복지로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안 들어오도록 만들어라. 외국에서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결국 구청이 철거하러 오겠다고 최후 통첩했다. 이 목사는 날짜와 시간을 특정해달라 요구하고 KBS·MBC·SBS에 연락했다. "3사 방송국이 다 온다고 그랬어요. 그게 그 사람들이 알고 난 뒤에 철거를 무산시켰죠." 방송보도에 따른 여론의 비난이 두려웠던 것 같았다. 경찰도 가만있지 않았다. 과학수사대가 출동해 베이비박스로 아이가 들어 온 직후 지문 채취를 시도했다. 이 목사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수건으로 지문을 닦아낸 뒤 자기 지문을 찍고 말했다. "(이 지문의 당사자가) 아이를 맡긴 사람이니까 지문 조사해서 처벌해라. 국가가 보호자가 보호할 수 없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무작정) 엄마를 처벌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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