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산책하러 나서는 길이었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산수유가 노랗게 피었고 목련은 곧 꽃을 피울 태세로 동그랗게 몽우리를 품고 있었다. 진짜 봄이 오려는지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는 꽃나무를 보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내일쯤이면 하얀 목련이 활짝 피려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쪽문을 나섰다. 깊은 숨을 내쉬고 공기를 들이마신다. 양팔도 천천히 흔든다. 햇살이 어찌나 좋은지 오전에 나서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둘레길을 천천히 걸어 한 바퀴 돌면 20여 분이 걸린다. 두 번째 바퀴를 돌다가 좀 전에 지나치고 보지 못했던 노란 개나리가 내 발길을 잡는다. 만개한 건 아니지만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살짝 내려앉은 꽃 몇 송이가 앙증맞았다. 가까이 다가가 노란 꽃을 감상하노라니 발밑에 무언가가 보였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아기 쑥이었다. 봄볕을 받은 곳에서만 쑥이 군데군데 자라나고 있었다. 봄이란 녀석이 방실방실 웃으며 여기저기 내려앉고 있었다. 쑥을 마주하니 잊고 있던 기억 한 자락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는 항상 봄이 되면 동네 아주머니와 들판으로 나가 쑥을 한 광주리 뜯어오곤 했다. 그땐 둑이나 논두렁 밭두렁에도 쑥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쑥을 뜯는 일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무딘 칼을 들고 쑥을 뜯어볼 심산으로 따라나선 적도 더러 있었다. 그 일은 어린 나에게는 그다지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드렁해서 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집에 가라며 손을 훠이훠이 저어 댔다. 못 이기는 척하며 아주머니 집 앞 골목으로 돌아와 놀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방앗간에서 잘라온 쑥 절편을 콩고물에 고루 묻혀 빨간 고무 대야에 차곡차곡 담았다. 대문 옆에 서 있는 나를 부르며 손짓해서 오라고 했다. 부끄러워서 쭈뼛쭈뼛 다가가자 노란 콩가루 옷을 입은 쑥떡을 먹어보라며 두어 개 쥐여주었다. 엄마가 나를 잊지 않고 불러주니 배가 간지럽도록 좋았다. 쑥떡은 어린 나에게 허기를 채워 줌과 동시에 엄마를 기다리는 외로움도 채워 주는 맛이었다. 난전에서 쑥떡을 팔아야 했던 엄마는 내가 따라오면 성가실까 봐 집에서 놀고 있으라며 걸음을 옮겼다. 따라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집으로 가지 않고 골목에서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친구들과 땅따먹기 놀이도 하고 공기놀이하다가도 골목 입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친구들과 놀고 있어도 그 시간은 지루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떡을 다 팔았는지 빈 대야를 손에 들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때 엄마의 월남치마가 햇빛에 반짝 빛났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 주는 쑥떡을 먹으며 자라났다.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에게 쑥떡은 생계였다. 쑥떡이 봄맛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아마 그즈음이지 싶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해마다 봄이면 쑥을 뜯어서 쑥떡을 가져다주곤 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친정 식구들은 모두 엄마가 만들어 주는 쑥떡을 봄이 되면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쑥떡은 우리 집에선 봄을 맞이하는 통과의례였던 것 같다.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