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를 보고 있을 때, 루브르 직원이 열어준 바리케이드
오마이뉴스

모나리자를 보고 있을 때, 루브르 직원이 열어준 바리케이드

지금은 천만 관객이 넘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던 무렵,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 배경지인 영월 청령포를 찾았다. 스크린 너머로 보았던 단종의 비극적인 서사와 그를 둘러싼 서정적인 풍경을 직접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영화적 낭만이 아닌, 절벽처럼 깎아지른 현실의 벽이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한 면이 험준한 암벽으로 막힌 청령포는, 휠체어를 탄 나에게 500년 전 단종이 느꼈을 법한 고립감을 그대로 재현했다. 선착장의 가파른 경사와 거친 흙길, 그리고 무심하게 놓인 수많은 문턱 앞에서 내 이동권은 처참히 꺾였다. 수많은 인파가 영화의 여운을 즐기며 안으로 사라질 때, 나는 그들의 뒷모습만을 배웅하며 선착장 언저리에 남겨졌다. 영화는 천만 이상의 마음을 열어젖혔지만, 정작 그 현장의 시스템은 나 한 사람의 진입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지독한 적막 속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수만 리 밖,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곳 역시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견고한 성벽이었으나, 나를 멈춰 세우는 대신 기꺼이 길을 터주었던 곳이다. 영월 청령포에서 생각난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711번 방은 사계절 내내 과포화 상태다. 2018년 1월, 그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람객들이 겹겹이 성벽을 쌓고 있다. 휠체어에 앉은 내 시선 높이에서 마주한 것은 신비로운 미소가 아니라, 타인의 등허리와 가방, 그리고 허공을 빼곡히 메운 스마트폰의 뒷면들이었다. 까치발을 들 수도 없는 나에게 모나리자는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신화 속의 유령 같았다. 물리적인 한계 앞에서 나는 고립된 섬이 되었다. 비장애인의 어깨 너머로 조각난 풍경만을 훔쳐봐야 하는 처지. 같은 관람객임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조건이라는 변수 앞에서 나의 관람권은 힘없이 유예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안 보인다'는 물리적 불편함을 넘어, 공공의 공간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존재론적 소외감이었다. 그때였다. 인파를 통제하던 루브르의 직원이 군중을 헤치고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 휠체어와 그림 사이를 가로막은 거대한 인파의 벽을 잠시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모나리자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으십니까?" (Would you like to see the Mona Lisa more closely?)"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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