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나는 2년여 전 서울미술관에서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에서 처음으로 이중섭을 마주했다. 일본으로 떠나보낸 아내 마사코와 태현, 태성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화에 특히 마음이 머물렀고, 그를 따라 그의 삶과 작품을 더듬어 보았다. 제주에 온 김에 이중섭기념관을 찾아 그의 진면목을 보고 싶어 서귀포로 향했다. 서귀포의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올 즈음 도착한 이중섭미술관은 아쉽게도 2027년까지 개축 공사 중이었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가 발길을 옮겨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기념관으로 들어섰다. 본관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오히려 기념관 곳곳에 배어 있는 흔적들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연보와 키오스크에 새겨진 치열한 숨결 전시실 내부로 들어서니 연보를 통해 그의 짧은 생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었다. 1916년에 태어나 1956년, 마흔의 나이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의 삶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거쳐, 전쟁을 피해 이곳 서귀포까지 내려와야 했던 유랑의 세월이 연보의 행간마다 짙게 스며 있었다. 전성기라 부를 만한 시기 없이 이어진 고단한 기록 속에서도, 1951년 서귀포에서의 11개월은 가족과 온기를 나누었던 생애 가장 따뜻한 시간으로 남아 있었다. 전시장 한편의 키오스크 앞에 서서 작품들을 한 장씩 넘기자 그의 독특한 화풍이 서서히 펼쳐졌다. 은박지를 송곳으로 긁어낸 그 예리한 선들은, 가난이라는 결핍마저 예술의 도구로 삼았던 화가의 처절한 집념이었다. 담배갑 속 은박지를 펴서 그린 은지화에는 굶주림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의 고독한 투쟁이 배어 있었다. '소'를 그린 거친 선에서는 시대를 향한 응축된 힘과 포효가 느껴졌고, 아이들과 물고기가 어우러진 장면에서는 가족을 향한 화가의 한없이 순한 시선이 드러났다. 디지털 화면 너머임에도, 그 선과 색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화가의 뜨거운 숨결을 전해주고 있었다. "당신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기념관 한쪽 벽면에 걸린 "당신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 드는 때도 있었어요"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발걸음이 무겁게 멈췄다. 그 말에는 남편을 향한 아내 마사코의 지독한 기다림과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의 와중에도 오직 사랑 하나만을 믿고 현해탄을 건너온 마사코. 화가는 그녀에게 '이남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평생의 안식처로 삼았지만, 현실의 거센 파도는 그들을 오래 붙잡아 주지 못했다. 서귀포에서의 시간은 그들에게 생애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다. 이중섭은 아내의 발가락까지 사랑스레 그려 넣었고, 아내는 그의 거친 손을 잡고 가난을 기꺼이 견뎌냈다. 그러나 지독한 생활고와 건강 악화는 결국 그녀를 다시 일본으로 떠나게 했다. 잠시의 이별이라 믿었을 그 시간이 이토록 길어질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편지가 바다를 건넜지만, 종이 위의 문장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허기가 그녀를 짓눌렀을 것이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그 문장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다시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이별의 공포를 홀로 견뎌낸 처절한 사랑의 고백처럼 읽혔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징검다리 삼아 그 모진 세월의 강을 건너고 있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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