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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얼마나 잔인한 음료인 줄 아나?" 유학생 각성시킨 미국 교수 | Collector
오마이뉴스

"커피가 얼마나 잔인한 음료인 줄 아나?" 유학생 각성시킨 미국 교수

1985년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 일리노이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내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을 달려 어바나-샴페인이라는 쌍둥이 도시에 도착했다. 4년의 고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학교를 찾아갔다. 그리고 지도교수 연구실에 들어섰다. 나의 은사, 수염이 덥수룩하고 표정이 근엄한 클래어런스 J. 캐리어 교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날 캐리어 교수의 손에는 하얀 머그잔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에 담긴 검은 액체가 풍기는 향기는 좁은 연구실을 가득 채웠다. 무슨 얘기를 할까? 잠시 망설이는 순간 캐리어 교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길상, 커피 좋아하나?" 정말 의외의 질문이었다. 지도교수와의 첫 만남을 대비해서 생각했던 주제가 아니었다. 우리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뭐냐? 여기에서 무슨 연구를 하려고 하느냐? 영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느냐? 그런 예상 질문들을 만들어 나름 준비하였던 나에게는 매우 낯선 주제였다. 물론 답이 어렵지는 않았다. "네 마십니다"라고 또렷하게 대답하자, 캐리어 교수는 질문을 이어갔다. "한국에서는 무슨 커피를 마시나?" 역시 어렵지 않은 질문이었다. 당시 한국에는 동서식품에서 생산하는 맥스웰하우스 커피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맥스웰하우스 커피를 마십니다"라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날 커피 대화는 이후 나의 인생행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하나의 커피를 꼽자면 그날 지도교수의 손에 들려 있던 커피, 나는 마셔보지 못한 그 커피일지도 모른다. 맥스웰하우스를 마신다는 답을 듣자 지도교수는 이렇게 물었다. "맥스웰하우스 커피를 마실 정도로 한국이 그렇게 부유해졌나? 내가 CNN을 통해서 보는 한국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보이던데...." 그리고 질문을 이어갔다. "길상은 커피가 얼마나 잔인한 음료인 줄 아나?" 나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또 아는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커피는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노동자들이 노예처럼 착취당하면서 생산하고, 덕분에 미국이나 서양의 부유한 나라들은 이를 싸게 가져다가 즐기는 거지. 아마도 세상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이렇게 완벽히 구분되어 있는 물품은 커피밖에 없을 거야. 역사적으로 커피 생산 국가에서 노동자들의 하루 인건비는 선진국에서의 커피 한 잔 가격을 넘어선 적이 없어." 이런 설명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지도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한국 전쟁 때 춘천 부근에서 2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본 한국, 그리고 지금 TV로 보는 한국은 여전히 어려운 나라야. 보통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학문하는 지식인은 커피 한 잔 속에 담긴 역사, 사람의 땀과 눈물 이런 것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 그날 알았다. 캐리어 교수는 6.25 참전 용사였다. 제대군인에게 제공하는 정부 장학금(G.I. Bill)을 받기 위해 아내와 네 아이를 남겨둔 채 낯선 나라 한국까지 날아와 목숨 걸고 전쟁을 했던 분이다. 춘천 부근에서 전투 중 총상을 입었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미국으로 후송된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꿈꾸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날도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나는 그날 이후 미국 유학 4년 동안 커피를 제대로 마셔본 기억이 없다. 학과 사무실에 놓여있는 커피메이커에는 늘 따듯한 커피가 있었고, 누구나 마시고 싶으면 25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옆에 놓고 마실 수 있었다. 학과 행정 직원인 바바라는 늘 나에게 커피를 권하였지만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다.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아이스 브레이커 역할을 하는 물질로 대표적인 것이 커피다.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교양처럼 여겨진다. 함께 공부하던 많은 학생들도 지도교수 연구실을 방문할 때 머그잔 가득 커피 한잔을 들고 들어가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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