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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서 호랑이와 토끼는 처음부터 위상이 극과 극인 관계다. 한쪽은 산군(山君)이라 불리는 최상위 포식자라면, 다른 한쪽은 귀를 쫑긋 세우며 살아남는 법을 궁리해야 하는 먹이사슬의 말단에 있다. 그런데 동양의 오행(五行) 체계 안에서 이 둘은 뜻밖의 공통점이 있다. 십이지(十二支)에서 호랑이는 인(寅), 토끼는 묘(卯)로 나란히 오행의 목(木)에 속한다. 목의 기운은 뻗어 오르는 힘, 새벽을 여는 기운, 봄의 기운으로 리더십과 추진력, 권위를 상징한다. 호랑이의 리더십은 강함과 카리스마로 앞장서는 것, 맹렬히 달려드는 힘으로 한때 이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한다. 불확실한 시대, 강요보다는 회유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기에는 토끼의 리더십이 더 필요하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는 뜻으로, 요즘처럼 변화의 폭이 큰 상황 속에서는 임기응변을 통한 적절한 대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문화유산 속에서 호랑이와 토끼에 대한 작품은 무엇이 없을까 궁금함이 이어지던 차에 흥미로운 벽화가 있다고 해서 지난 5월 31일 서울 화계사로 탐방을 떠났다. 역사를 담은 호랑이와 토끼 벽화 서울 강북구 수유동,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화계사(華溪寺)는 조선 왕실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특히 흥선대원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가 재야에 있을 때 화계사에서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행했으며, 이에 따라 아들인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경내는 산기슭의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조성돼 있다. 대적광전 뒤쪽이 중심 구역으로 본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 위쪽으로 단을 하나 높인 삼성각, 우측에는 명부전을 배치한 게 독특했다. 먼저 삼성각에는 산신을 모시고 있었는데 불단 위에는 나무로 깎아 만든 호랑이가, 벽면에는 산신을 우측에서 보좌하는 모습으로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다. 명부전은 1878년 초암 스님이 조대비의 시주를 받아 중건한 곳으로, 명부전 현판 글씨와 기둥의 주련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건물 내부에 조성된 목조지장보살 삼존상과 염라대왕을 포함한 시왕상(十王像) 일괄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건물의 정면은 통상적으로 앞을 바라보는데, 여기는 대웅전 측면을 향해 배치된 것이 특이했다. 또한 좁고 경사진 지형 때문인지 건물 좌측은 이단으로, 우측에는 기둥 부분까지 3단으로 구획되어 있었다. 좌측 벽면에는 새로운 자재로 보수 되었는지 깔끔했다. 그리고 호랑이와 토끼 벽화가 있는 곳은 바로 우측 벽면이었다. 제일 윗단을 좌우로 나누고 왼쪽에는 호랑이와 토끼를, 오른쪽에는 사슴 등이 그려져 있었다. 건물의 방풍판으로 가려져 있어 쉽게 보이는 곳은 아니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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