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근래 들어 인상파의 작품 전시회가 빈번하게 열린다. 르누아르, 드가, 고흐, 모네 등 인상파 화가의 이름이 들어간 전시회에는 '인상주의까지', '인상주의 넘어', '미국으로 넘어간 인상파' 등의 제목이 붙는다. 왜일까? 유럽의 인상주의는 19세기 중후반 파리의 도시화와 관련이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카페, 공원, 거리 문화의 발달, 여가 문화 확대. 이런 도시화를 배경으로 인상주의는 싹이 텄고 만개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전국의 아름다운 강이나 호수에 카페가 들어서고, 동네마다 꽃과 나무들로 장식된 공원이 단장 되고, 주말이면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혹 이것이 인상주의가 대중적으로 환영받는 배경은 아닐까? <달빛> 음악에서 그 인상주의의 문을 처음으로 연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 그의 <달빛>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피아노곡이다. 폴 베를렌의 시에서 영감받아 작곡한 <달빛>의 아름다움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몽환적이면서도 안개를 머금은 듯한 화음과 종잡을 수 없는 리듬, 길고도 아름다운 선율에서 피어오르는 듯한 알 수 없는 갈망은? 밤이다. 미지근한 열기가 남아 있는 방안, 드뷔시의 <달빛>은 낮의 모든 흥분과 소란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우리를 유혹한다. 낮이 아닌 밤의 세계, 이성과는 먼 꿈의 세계로. 그 유혹은 거칠거나 충격적이지 않고 은근하다. 하지만 듣는 이를 서서히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고는 현실에서 한 발을 떼게 한다. 오래전, 종로에서 <그린 파파야의 향기>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베트남의 유복한 집 거실에서 잘생긴 남자 배우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하녀로 일하는 무이가 식사가 담긴 트레이를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피아니스트와 하녀 사이로 유려하게 흐르는 <달빛>의 피아노 선율. 무이의 내면에 자리 잡은 꿈과 갈망이 고스란히 관객의 귀에 와닿는다. 이어서 듣는 <아라베스크 1번>. 어떤 강렬한 주제도 없이 빛의 부서짐처럼, 물결의 부드러운 흐름처럼,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시간이 그대로 물 흐르듯이 흐를 것 같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가는 물처럼 피아노의 물결이 흐른다. 시작도 끝도 없는 아름다운 환영의 흐름. 드뷔시의 음악에서 물결처럼 흐르는 피아노 소리는 모네의 그림에서 보이는 빛의 번짐과도 많이 닮았다. 처음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본 것은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날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가 한 귀퉁이에서 전시회 소식을 접했다. 그날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섰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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