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or
Giriş Yap
자기만 소중하다고 믿는, 요즘 학교서 찾기 힘든 아름다운 모습 | Collector 가 보여주는 '환대의 마음' 자아비대증이 만연한 시대에 이런 우정을 말하면,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휴머니즘에 기대어서 케케묵은 인간주의에 매여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과연 '인간'의 의미,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관계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바로 이 질문을 파고든다. 같은 인간도 아닌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 과연 이해와 우정과 희생은 가능할까? 전체 내용보기"> 가 보여주는 '환대의 마음' 자아비대증이 만연한 시대에 이런 우정을 말하면,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휴머니즘에 기대어서 케케묵은 인간주의에 매여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과연 '인간'의 의미,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관계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바로 이 질문을 파고든다. 같은 인간도 아닌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 과연 이해와 우정과 희생은 가능할까? 전체 내용보기"> 가 보여주는 '환대의 마음' 자아비대증이 만연한 시대에 이런 우정을 말하면,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휴머니즘에 기대어서 케케묵은 인간주의에 매여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과연 '인간'의 의미,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관계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바로 이 질문을 파고든다. 같은 인간도 아닌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 과연 이해와 우정과 희생은 가능할까? 전체 내용보기">
자기만 소중하다고 믿는, 요즘 학교서 찾기 힘든 아름다운 모습

자기만 소중하다고 믿는, 요즘 학교서 찾기 힘든 아름다운 모습

오래전에 읽었던 기사 내용이 인상적이라 메모를 해놨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기이한 꼴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려는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서 그 메모가 다시 떠올랐다. 2014년 기준으로 각 국가별 사회관계 지원을 평가하는 부문에서 한국은 OECD 34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를 평가한 점수에서 한국은 72.37점을 기록해 OECD(88.02점) 평균에 크게 못 미쳤고 회원국 중 최저였다. 특히 한국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5∼29세의 점수는 93.29점으로 OECD 평균(93.16점)보다도 높았지만 30∼49세(78.38점)에서 점수가 급격하게 낮아졌다. 50세 이상의 점수는 67.58점으로 1위인 아일랜드(96.34점)보다 무려 30점가량 낮았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극심한 관계망 격차,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은 더 심해졌다. 2026년 3월에 발표된 통계청의 2025년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고립도는 더 높아졌다.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을 사람이 없는 비율을 뜻하는 사회적 고립도는 2025년 기준 33%를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27.7%)보다도 높아졌다. 국민 3명 중 1명은 갑자기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하거나, 우울할 때 속마음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다고 느낀다. 이런 통계는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고립감은 결국 자신을 지켜줄 존재는 오직 자신뿐이며, 남을 배려하는 타협이나 절충, 양보는 필요 없고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남을 딛고 올라서더라도,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태도를 퍼뜨린다. 그래서 세상에 자기밖에 없다는 자아비대증이 득세한다.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학교는 그런 징후를 미리 보여준다. 긴급한 일이 쉴 새 없이 터지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 문제는 늘 뒷전으로 밀리지만,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이다. 얼마 전 다른 학생과 다툼으로 분리 조치돼 상담을 받던 초등학생이 교실로 돌아가고 싶다며 교사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하며 책과 사물함 자료를 집어 던진 일이 일어났다. 왜 그랬을까? 그게 한 아이의 순간적 일탈일까? 아니다. 아이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남들과 어울려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도 오직 자기 아이만 소중하다고 가르치고 교사에게 그걸 요구하는 부모들이 만들어낸 참담한 모습이다. 아이는 배운대로 행동할 뿐이다. 그렇게 자아비대증으로 충만한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수많은 비대한 자아가 충돌하면서 배려와 양보, 상호 이해에 기반한 우정의 가치를 전혀 모른 채, 자기만 소중하다고 믿는 이들로 채워진 사회는 문제가 없을까? 모든 걸 데이터로 수량화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AI 시대에 서로 다른 사람이 맺는 관계, 우정의 배움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자니 오래전 읽은, 우정에 관한 평론가 김현의 글이 생각난다. "우정이 있는 게 아니라, 가끔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한 작가는 꼬집듯 말하고 있다. 사람의 이기적인 면을 잘 꼬집는 말이지만,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정이니 뭐니하는 거창한 말은 빼더라도,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마음 놓이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중략) 우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그 작가는,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가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놀랍다!" <헤일메리>가 보여주는 '환대의 마음' 자아비대증이 만연한 시대에 이런 우정을 말하면,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휴머니즘에 기대어서 케케묵은 인간주의에 매여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과연 '인간'의 의미,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관계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바로 이 질문을 파고든다. 같은 인간도 아닌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 과연 이해와 우정과 희생은 가능할까?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